출처: 뉴스앤조이
주일예배 후 공동식사 시간, 남자 집사님 서넛이 아주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다. 이 대화의 시작은 그들 중 하나가 나치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본 훼퍼 목사의 행위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다. 한참 옥신각신 '행위의 정당성'을 놓고 설전이 오가던 중, 침묵을 지키고 있던 최 집사님이 입을 열었다.
"본 훼퍼는 나치가 복음에 위배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과감히 목숨을 걸 수 있었던 겁니다. 저항을 위한 저항도,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저항도 아니었어요"
독일 유학파 출신 최 집사의 일갈에 이 짧지만 의미심장한 논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대화는 최 집사의 독일 유학시절로 넘어갔다. 그는 독일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교회 강단에서는 자주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선포된다. 그러나 정작 이 '사회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함구'한다.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의 성향에 따라 확연히 다른 의견이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최 집사가 내린 정의는 아주 분명하고, 선이 굵다. '상황 또는 행위가 복음에 위배되었을 때...'
지난 10월 10일, 미국그리스도교회(The US United Church of Christ) 총회장(General Minister and President of UCC) 존 토마스 목사(Rev. John H. Thomas)와 같은 교단 '정의와 증언 사역부' 책임자 린다 자라밀로 목사(Rev. Linda Jaramillo)가 백악관 정문 앞에서 이라크전 반대 피켓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의 체포사유는 백악관 정문 앞 '집회금지구역(No Protest Zone)'을 떠나라는 경찰의 명령을 거절했다는 이유였다. 이로 인해 두 목회자는 손이 밧줄에 묶인 채 경찰차로 호송 됐으며, 이날 밤, 각각 100불의 벌금을 지불하고 풀려날 수 있었다.
당초 토마스 목사와 자라밀로 목사는 '이라크전 종식'을 청원하는 미 국민 6만 여 명의 서명이 담긴 '목회서신(Pastoral Letter on the Iraq War)'을 직접 부시대통령에게 전달할 계획이었으며, 이를 백악관 측에 공식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들의 방문을 거절했다.
이에 토마스와 자라밀로는 백악관 정문 앞 '집회금지구역'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을 수정하여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들이 이 구역을 선택한 것은 그리스도인들과 공교회의 양심적인 목소리를 방관하고, 묵인하는 백악관에 대한 저항 의지를 담고 있었다.
시위에 앞서 토마스 목사는 당시 이 자리에 함께 했던 50여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지금은 전쟁을 반대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무척 어려운 시간”이라며, “이 날의 상징적인 실천행위는 전체 교회의 매우 의미 있는 증언중 하나가 될 것(The symbolic act was a very meaningful witness of the whole church)”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날의 저항은 그들이 속한 교단을 통해 전 세계 교회로 타전됨으로써 단지 두 명의 미국 교회지도자를 넘어, 이 일방적인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자라밀로 목사는 시위에 앞서 “우리는 교회로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As a church, we can no longer be silent)”는 말로 이날 시위의 의의를 밝혔다.
본 훼퍼는 “교회가 침묵하는 것은 악마와 손을 잡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교단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행위가 미칠 파장을 토마스 목사도 충분히 고려하고 검토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백악관 정문 앞에 설 수 있게 한 것은 본 훼퍼가 남긴 이 말이 자신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본 훼퍼가 경고한 '교회의 침묵'에 응답하며, 이 날 세계 패권의 상징 백악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이 침묵을 깨는 중입니다(We are breaking that silence today)"
미국 그리스도교회는 1957년 미국회중교회(the Congregational Christian Churches)와 복음주의 개혁교회(the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가 합쳐져 세워진 교단으로, 현재 1200만 성도가 소속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전 발발 이 전부터 '전쟁을 반대한다'는 교단의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뉴스를 접하며, 개신교회가 주도하는 집회 때마다 대열의 선두에서 현수막을 들고 앞장서 행진하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일 그들 중 '복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어느 한 명이라도 '이라크 주둔 한국군 주둔연장 반대!'가 적힌 피켓을 들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하는 1인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벌였다는 뉴스가 나온다면, 참 멋있어 보일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교단장의 '삭발투혼'까지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