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투정에 일나가는 엄마는 무거운 발길
토요일 근무하는 여성근로자 300만명
"그나마 쉬면 쥐꼬리 월급마저 깎일판"
[조선일보 이성훈, 오해정 기자]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5일 근무제(주40시간 근무제)가 확대 시행되면서, 주말에도 쉴 수 없는 이들의 그늘은 더 깊어졌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주부 근로자들과 아이들이 특히 그렇다. 엄마·아내·며느리로서의 주말 역할을 반납한 주부 근로자들은 가족에 대한 마음의 빚이 늘었다. 엄마를 일터로 보낸 아이들에겐 엄마의 빈자리가 더욱 커졌다.
대형 할인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주부 박모(37)씨의 귀에는 아직도 아들 은태(10)의 말이 맴돈다. 최근 토요일에 출근하는 엄마에게 은태는 “우리는 언제 가족여행가?”라고 물었다. 은태는 “친구가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을 학교에 가져와 자랑했다”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빠·엄마가 조금만 더 안정되면 가자.” 엄마의 말에 착한 은태는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박씨의 마음을 더 쓰리게 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여성근로자 수는 439만4000여명(2003년 기준)이다. 이 가운데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여성이 90%인 393만3000여명이다. 이 중에도 주5일 근무제를 하는 곳이 있어, 노동부는 전체 여성 근로자 중 70% 정도가 비(非)주5일 근무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 서소문동의 횟집에서 일하는 신모(44)씨는 7월 들어 토요일에는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퇴근한다. 주5일 근무제 확대 이후 토요일 손님이 줄어 가게 문을 일찍 닫는 것이다. 40분 걸려 전철을 타고 은평구 집에 도착하면 오후 9시쯤. 학원에서 돌아온 고1 아들이 그를 반긴다. 함께 앉아 과일을 먹고 아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새로 생긴 토요일 저녁 휴식이 신씨에게는 고민거리다. 매출이 줄자 사장이 토요 휴무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100만원 남짓한 월급이 얼마나 줄지 한숨만 나온다. “주말에 쉬면서 아들 따뜻한 밥 챙겨줄까, 아니면 한푼이라도 더 벌어 영어학원 보낼까.” 신씨의 모정(母情)은 갈등하고 있다.
결혼 10년차 주부 곽모(35)씨의 직장은 대형 할인점이다. 무역중개업을 하는 남편의 벌이가 경기침체로 줄자 7개월전 어렵게 구한 일자리다. 주말 유치원에 가지 않는 막내 윤준(6)이는 한동안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엄마 일 안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곽씨가 하루치 식사를 차려 놓고 나가면, 두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는 남편 몫이다. 작년부터 큰 아들 원준(10)이는 주말 현장학습 숙제가 부쩍 늘었다. “다른 아이들은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바닷가로 여행가서 보고 느낀 점을 발표한다는데, 원준이는 어떤 내용을 발표할까.” 곽씨는 늘 걱정이다.
지난 8일 서울 성수동 인쇄공장에서 만난 차모(33)씨는 “주5일제가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좋고 나쁘고가 어디 있냐”고 말했다. 그녀의 인쇄공장 동료 11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정부는 2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2011년 이전에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종각(43) 정책본부장은 “소규모 사업장의 여성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저임금에 힘겨워한다”며 “주말에 쉬고 싶지만, 생계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