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다."
종교간 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신학자의 평가다. 타종교를 바라보는 한국기독교의 시선은 지극히 배타적이거나 더 나아가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목 잘린 단군상, 불상에 칠해진 붉은 페인트, 거대한 확성기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특공대 등은 호전적인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60일이 넘는 동안 불교 수경 스님, 천주교 문규현 신부, 원불교 김경일 교무와 함께 목숨을 건 삼보일배(도)를 감행한 이희운 목사는 순례 기간 내내 냉랭한 기독교계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큰 십자가를 손에 들고 절이 아닌 기도를 하는 방식(삼보일도·三步一禱)으로 순례를 이어나갔지만 기독교인들의 차가운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순례단을 방문하고 싶어도 이희운 목사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욕먹는 것이 두려워 포기한 목회자들도 많았다. 삼보일배(도)로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고생할 각오를 하고 출발한 이희운 목사였다. 그의 예감은 1년이 지난 지금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6월 10일 선교를 위해 남부 인도로 출국하는 이희운 목사는 후원교회를 찾는 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회 제직 중에 삼보일배에 참여한 이희운 목사를 선교사로 보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치를 적극 존중하는 내용을 담은 조용기 목사의 강연에 대해 기독인들이 보이는 반응 역시 이와 유사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아무런 문제없이 강연장을 떠났던 조용기 목사는 4일 뒤인 5월 16일, 설교에 앞서 장황한 해명발언을 해야만 했다. 불교를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강연을 했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불교, 기독교 모두 나름대로의 구원의 메시지가 있다"며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조 목사의 발언을 계기로 타종교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전개되길 기대했다는 한 중견 목회자는 "이번 해프닝은 한국교회에서 '다원주의'라는 낙인은 일반사회의 '빨갱이'와 비견할 만한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오직 예수 십자가로!
기독인이 다른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배타주의(exclusivism), 특정주의(particularism), 절대주의(absolutis) 등으로 불리는 사상이다. 이런 분류는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기독인의 입장이 아닌 종교사회학자들의 편의적 기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배타주의는 오직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며 다른 종교는 죄인의 구원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기초적인 기독교 신앙관을 지칭한다. 배타주의는 예수를 모르는 모든 사람은 물론 다른 종교에 귀의한 사람도 전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성인경 목사(한국라브리 대표)는 자신의 입장을 배타주의라기보다 절대주의라고 말한다. 구원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성 목사는 구원의 길이 기독교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각 종교의 다양성과 독특성은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종교간 대화의 주제로 비본질적인 것은 가능하지만 본질적인 영역은 타협이나 대화, 혼합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인격성 △기독교의 역사성 △구원의 유일성이다. 이런 기독인의 정체성을 강력히 선포하고 나서는 대화가 더욱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우 교수(한국신학정보연구원 소장)는 자신의 입장을 화이부동(和而不同·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이라는 논어의 격언으로 표현한다. 각 종교가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는 한도 내에서 화합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우 교수는 각 종교가 인류 사회의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인경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배타주의자에서 다원주의자까지 누구나 찬성하는 말이다. 그러나 배타주의자가 문제삼는 것은 다원주의자들이 말하는 정체성이 기독교의 역사성을 부인한다는 점이다. 배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성은 결국 그리스도의 유일성으로 이어진다.
▲ 5월 12일,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에서 강연을 마치고 스님과 반갑게 인사하는 조용기 목사. 조 목사는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4일 후 설교시간에 이를 적극 해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승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백도웅 목사 역시 예수 외에 구원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타주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백 목사는 배타주의를 주장하는 일반 학자들과 비교할 때 다른 종교와의 협력을 특히 강조한다는 점이 다르다. 백 목사는 평화를 위한 일에 각 종교가 함께 함으로 젊은이들을 교회로 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천주교 불교 원불교 성직자들과 함께 삼보일배(도) 순례를 해 다원주의자로 의심을 받은 바 있는 이희운 목사 역시 예수의 유일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배타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성경에 예수 외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는 점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확고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는 다른 종교인과 함께 공의를 위해 일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이 목사는 일부 기독인이 타종교인과의 연대를 병적으로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부활신앙이 있으면 다른 종교인을 껴안는 것이 두려울 이유가 없다. 잘 모르니 무서워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타종교인을 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교리와 도그마로 하나님을 가둘 수 없다
포괄주의(inclusivism)와 다원주의(pluralism)가 배타주의와 가장 다른 점은 기독교 구원의 유일성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타종교가 오류와 제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포괄주의라면 모든 종교에 각자의 구원이 있다고 믿는 것이 다원주의다.
김경재 교수(한신대)는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기독인들이 말하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어떤 개념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인이 가진 구원 개념을 다른 종교도 받아들일 것이라는 독단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기독교에는 기독교 나름의 구원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을 기독교의 개념으로 국한하지 않고 '참다운 인간 회복과 영적인 건강과 평화'로 넓게 본다면,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자신의 이런 입장이 조용기 목사의 강연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김경재 교수를 비롯한 대화주의자들은 타종교인과의 대화가 단순히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더욱 깊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믿는다. 자기 종교에 철저히 귀의하고 깊이 헌신하는 것이 타종교에 대한 개방성을 유지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주의자들은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결국 '혼합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대화주의자로 규정하는 이찬수 교수(강남대학교)의 입장은 더욱 분명하다.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을 특정한 진리나 도그마에 가두려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라는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신 분이기에 다양성 앞에 개방돼야 하며, 제도와 교리에 갇힌 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종교간의 대화는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찬수 교수는 전통적인 기독인들이 가지고 있는 구원 개념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죽음을 아는 사람은 없고 주검을 본 사람만 있을 뿐이다"는 격언처럼 구원을 확인할 방법은 삶의 열매 외에 없다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개방성으로 삶이 깊어져 이타적 생을 살아가는 상태'를 기준으로 구원을 생각하면 다른 종교를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포괄주의자나 다원주의자들의 이런 구원 개념은 필연적으로 전통적 기독인들이 보기에는 좀 낯선 선교 방식을 낳는다. 이태원교회 김용길 목사는 전도를 "자기 삶의 향기가 넘쳐흘러서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비워 있는 가슴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것은 죄"라는 것이다.
김은규 교수(성공회대)는 "구원을 강조하는 서구신학이 제3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토착문화를 말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방향을 성장에만 맞춰 다른 종교를 배타시하고 내 것만 내세우는 자세로는 더 이상 교회에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공격적인 선교 자세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만 양산할 따름이라는 주장이다.
2004년 05월 25일 양정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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