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기술위원회에서 허정무 감독이 '대형 스트라이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경기력에 기복이 적고, 꾸준하면서도 파괴력이 있는 타깃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나온 이름 석자가 바로 현재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맡고 있는 '황선홍'이다.
황선홍에 대한 기나긴 선수시절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볼리비아전과 폴란드전 두 경기만 놓고 봐도 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극심하게 엇갈렸는지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황선홍이 1990년대 한국축구를 책임졌던 대형 스트라이커였다는 점이다. 나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결국에는 한국에서 그를 넘어선 골잡이는 없지 않았는가. 황선홍은 확실히 세계적인 수준에 가장 근접했던 한국의 대형 골잡이였다.
잠시 옆으로 새서, 북한축구 이야기를 좀 해보자. 최근 북한축구의 전력이 상당히 강해졌다. 일단 수비가 매우 탄탄하다. 하지만 수비보다 더 무서운 게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대세'다. 이 까마잡잡한 북한 청년은 갖출 것을 다 갖춘 공격수다. 우선 빠르다. 순간적인 움직임이 탈-아시아급이다. 제공권과 몸싸움 능력도 갖췄다. 공중볼을 잘 따내고,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힌다. 거기에 득점력 또한 보유하고 있다. 빠른 슈팅박자와 슈팅의 힘이 수준급이다.
혹자들은
정대세를 '거품'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정대세는 북한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문인국과
홍영조 등의 빠른 선수들이 더 빛나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정대세다. 중앙에서 상대 수비수와 힘의 대결을 펼치면서 공격의 중심을 잡아주고, 좌측과 우측 그리고 후방까지 폭넓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진의 균열을 유도하는 것이 정대세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정대세 이야기를 한 이유는 스트라이커의 '존재감'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다. 골잡이의 궁극적인 목표는 역시 '골'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골잡이도 매경기 골을 잡아낼 수는 없다. 상대가 훨씬 더 강한 전력일 경우 전술적으로 다소 소극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상대 수비수가 만만치 않을 경우에는 골을 직접 넣는데 적잖이 애를 먹기도 한다.
이럴 경우, 스트라이커에게는 '존재감' 있는 활약상이 요구된다. 상대 수비수를 끌고 다니면서 빈 공간을 만들어주고, 집요하게 몸싸움 및 헤딩싸움을 하면서 다른 선수들이 보다 편안하게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존재감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정대세는 이번 최종예선에서 이런 모습을 확실히 선보이고 있다.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해도, 그의 '존재감'은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한국에게 황선홍의 존재감은 정말 특별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이란의 알리 다에이와 쌍벽을 이루는 대형 스트라이커였다. 그가 가진 득점력과 국제경기 경험, 그리고 창의적인 플레이는 한국이 가진 큰 자산이었다. 이웃 일본도 '황선홍 같은 골잡이가 없다'를 외치며 오랫동안 깊은 고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었다.
물론 세계적인 팀들과의 대결에서 황선홍이 그들을 압도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황선홍을 중심으로 모든 공격이 이뤄졌고, 그 때문에 한국이 강호들과의 대결에서도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전력이 열세에 놓여 소극적인 상황이었지만, 황선홍은 영리한 플레이로 상대 골문을 정조준하며 '우리도 한방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1990이탈리아월드컵 첫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도 신예 황선홍의 존재감은 빛났고, 1994미국월드컵에서의 1-4-4-1의 꼭지점, 2002한일월드컵에서의 맹활약상, 그리고 1998프랑스월드컵에서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 있었던 아쉬운 모습에서도 그의 존재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황선홍의 후계자는 진정 나오지 않는 것일까. 김도훈이 황선홍을 뒤따랐지만, 거의 동시대에 활약하면서 그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동국과 조재진은
허정무 감독의 냉정한 평가처럼 황선홍의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정성훈이 가능성이 있지만 적은 나이가 아니고, 정조국도 아직 한참 모자르다는 게 중론이다. 허정무 감독의 입장에서는,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재능있는 훌륭한 대형 스트라이커 감이 어서 빨리 나타나 '존재감 있는' 모습을 갖춰 나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지난 1일 남북전에서 허정무 감독은 정대세에 제대로 한방을 맞을 뻔 했다. 북한이 공격에 힘을 실기 시작한 후반 초반 정대세는 한국 중앙수비진 사이에서 타점 높은 헤딩슛을 날렸다. 한국은 이운재가 슈퍼-세이브로 볼을 걷어내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이 장면을 보고 허정무 감독은 크게 아찔했을 것이다. 지난해 동아시아대회에서 수비수와 몸싸움을 이겨낸 뒤,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 슈팅을 연결해 골을 뽑아낸 장면도 순간 스쳤을 법하다. 그러면서 '대형 스트라이커'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떠올린 것은 아닐까.
황선홍이 은퇴한 지 7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아직도 그에 대한 향수가 한국축구에 남아 있다. 과연, 한국축구는 언제쯤 황선홍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샬롬~
